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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탁월한 성악 앙상블과 참신한 연출의 재미

Apr, 2014


국립오페라단 '돈 조반니'

(서울=연합뉴스) 이용숙 객원기자 = 경쾌하지만 경박하지 않고, 익살스럽지만 과장되지 않았다. 관객들은 "공연 시간 3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게 잠시도 지루할 틈이 없었다"고 입을 모았다.

지난 12일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막을 올린 국립오페라단(단장 김의준)의 올봄 첫 작품 '돈 조반니'는 이처럼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관객에게 스며들며 재미와 기쁨을 선사했다. 중세 스페인의 바람둥이 돈 후안의 이야기를 오늘의 서울로 옮겨놓은 듯한 무대와 일상적인 의상, 우리 시대 언어와 위트를 창의적으로 사용한 번역 자막 등은 객석을 자주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1천 석 규모의 CJ토월극장은 모차르트 시대 민간극장과 비슷한 규모여서 출연진은 모차르트 오페라의 '아 메차 보체'(음량을 최대한으로 올리지 말고 알맞고 부드러운 소리로 노래하라는 의미)를 효과적으로 살릴 수 있었다. 이보다 두 배가량 큰 오페라극장에서 공연했다면 가수들은 음량을 더 키워야 한다는 부담을 느꼈을 것이다. 입장료가 오페라극장 공연보다 상대적으로 낮은 덕분에 젊은 관객이 많아 객석의 열기는 더욱 뜨거웠다.


이날 공연이 성공할 수 있었던 첫 번째 요인은 탁월한 캐스팅이다. 출연진 여덟 명이 한결같이 뛰어난 성악적 기량과 연기력을 발휘했다. 20대에 이미 2천65명의 여성을 농락했고 하인을 시켜 그 여성들의 신상명세를 정리한 목록을 만들게 한 호색한 돈 조반니. 신분, 돈, 외모, 지성 등 모든 것을 갖춘 이 매력적인 인물을 바리톤 공병우는 잘 다듬어진 발성과 민첩하고 정교한 발음으로 완성했다.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옷을 입은 듯한 그의 자연스러운 연기와 가창은 기중기 위에서 바람처럼 빠른 템포로 '포도주의 노래'(Fin ch'han dal vino)를 부를 때나 거대한 사과 위에 위태롭게 버티고 선 채 기사장과 대결하는 마지막 장면에서도 여유와 기품을 잃지 않았다. 이보다 더 뛰어난 돈 조반니를 만날 기회는 흔치 않을 것이다.

주역 이외에 이날 관객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가장 긴 박수를 이끌어낸 가수는 돈 오타비오 역의 테너 김세일이었다. 전형적인 모차르트 테너의 미성과 치밀한 호흡, 공들인 발성은 배역과 완벽하게 일치하는 연기와 더불어 돈 오타비오의 현신(現身)을 창조했다. 그가 '그녀 마음의 평화에'(Dalla sua pace)를 부를 때 객석은 숨죽인 채 그 우아한 간절함에 몰입했다.

빛나는 음색과 발군의 연기력으로 관객에게 즐거움을 준 돈나 엘비라 역의 소프라노 이윤아와 체를리나 역의 소프라노 양지영, 돈 조반니와 완벽한 연기 호흡을 보여준 레포렐로 역의 베이스 장성일 역시 아쉬움 없는 적역이었다.

돈나 안나 역의 소프라노 노정애는 연속적인 고음부에서 다소 고전했지만, 마음을 울리는 표현력을 보였고, 마제토 역의 바리톤 김종표는 공감할 만한 가창과 놀라운 무대 감각으로 존재감을 부각시켰다. 기사장 역을 노래한 베이스 전준한의 아름다운 음색과 정확하고 안정된 가창은 더 길게 들을 수 없어 아쉬울 정도로 훌륭했다.



이날 프라임필하모닉오케스트라를 이끈 지휘자 마르코 잠벨리는 적절한 템포로 유연하게 음악의 극적 효과를 살렸다. 다만, 전반적으로 대비와 생동감이 조금 더 두드러졌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었다.

기중기에 묶인 거대한 사과로 사회규범에 함몰돼 사라진 가치와 개인의 진솔한 감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정선영의 연출과 김희재의 무대디자인은 독창적이고 유쾌했다.

범죄자이면서 정신질환자일 수 있는 주인공 돈 조반니의 긍정적, 영웅적 면모를 부각시킨 점은 논란의 여지는 있으나 참신했다. 획일화된 아파트의 일상을 보여주는 체를리나의 결혼 축하연 배경, 1막 파티 장면에서 화려한 유원지 조명으로 변신하는 기중기, 2막에서 돈 조반니가 세레나데를 부르자 호텔에 투숙한 여성들이 모두 자신을 부르는 줄 알고 내다보는 장면 등 기발한 아이디어가 만발해 관객이 무대에서 눈을 뗄 수 없게 했다. 다만, 무대전환을 위해 막을 내린 상태로 상당 분량의 아리아와 중창을 막 앞에 마련된 좁은 공간에서 노래하게 한 것은 삭막하고 갑갑한 느낌이 들어 과연 다른 해결책은 없었는지 생각해보게 했다.


관객이 연출 노트를 미리 읽지 않고 무대만 봐서는 극 전체를 관류하는 연출의 취지를 이해하기 어렵다는 아쉬움도 있다. 공연 전에 작품 관련 정보를 담은 프로그램 북을 미리 읽어본다면 이해에 훨씬 도움이 될 듯하다. 공연은 16일까지 계속된다.